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리앙 디블랭 (문단 편집) === 본격적인 활동 === 바리정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막내 아들인 바리정이 부친과 구별하기 위해 프랑스식 발음인 발리앙으로 불렸고 바로 이 항목의 주인공인 이벨린의 발리앙이 되겠다. 이후 발리앙의 어머니인 엘비가 람라 영지를 상속으로 물려받았고, 첫째 아들인 위그가 어머니로부터 람라 영지를, 아버지로부터 이벨린을 상속받았다. 1169년 장남인 위그가 스페인 산티아고로 순례여행을 떠났다가 죽는 바람에 둘째 아들인 보두앵이 다시 상속 받게 되었는데 보두앵은 자기가 람라 남작령의 영주가 되었고 자기 동생인 발리앙에게 이벨린 남작령의 영주 자리를 봉신의 지위로 나눠 주었다. 야파 백작령은 예루살렘 국왕의 직할지이므로 람라령주인 보두앵은 [[예루살렘 왕국|예루살렘]] 왕의 봉신이 되었고 발리앙 역시 간접적으로 예루살렘 왕국의 봉신이 되었다. 발리앙은 1174년 [[트리폴리 백국]]의 [[레몽 3세]](Raymond III de Tripoli)를 도와 아랍 세력과의 전쟁을 지원하였으며, 1177년에는 몽기사르 전투에 참전하여 [[이슬람교|무슬림]] 세력의 방어선을 박살내는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모리 1세]]의 미망인이던 마리아 콤네나와 결혼을 하였는데, 이 여인이 누군고 하면 바로 [[동로마 제국]]의 황제 [[마누일 1세]] 콤네노스의 조카(!) 되시겠다. 그 덕분에 1179년 [[살라흐 앗 딘|살라딘]]과의 전투에서 형 보두앵이 포로로 사로잡혔을 때, 마누엘 1세가 직접 몸값을 지불해 줘서 석방될 수 있었다.[* 발리앙이 마리아 콤네나와 결혼함에 따라 둘째 형인 보두앵도 예루살렘 왕국에서 꽤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어 한때 시빌라의 결혼 상대로 거론될 정도였다. 발리앙은 마지못해서라도 기 드 뤼지냥에게 충성서약을 했지만 보두앵은 이를 거부해 [[안티오크 공국]]으로 쫓겨나서 거기서 죽었다.] 물론 마리아 콤네나가 동로마 황제의 조카라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마리아 콤네나가 예루살렘 국왕인 아모리 1세의 아내라서 예루살렘의 왕비였다는 점이다. 즉, [[보두앵 4세]]와 [[시빌라]]의 새엄마이며 유력한 왕위 계승자인 이사벨라의 친모이기도 하다. 신분 차이가 꽤 컸는데도 발리앙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넷이나 두었던 걸 보면 의외로 금슬이 좋았던 듯하다. 덤으로 마리아 콤네나는 아모리 1세에게 상속받은 나블루스 남작령도 가져와서 발리앙의 영지가 더 늘어나게 된다. 발리앙이 [[예루살렘 왕국]]의 중요 인물로 등장하는 건 이때부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